[항공기 사진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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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용기-제2차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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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군용기 1950-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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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군용기 1970-1980
   현대군용기 1980-1990
   현대군용기 1990-2000
   현대군용기 2000-미래

   3. 민간기발달
   민간수송기 1910-1920년
   민간수송기 1930-1940년
   민간수송기 1950-1960년
   민간수송기 1970-1980년
   민간수송기 1990-2000년

 


a. 열공기 기구의 구상

불을 발견한 인간은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늘 보아 왔으나 이것이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로서 이것을 이용하면 하늘로 떠올라 가고 비행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뜨거운 공기나 수소와 같이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한 기구에 관한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13세기 초의 영국의 로저스 베이컨( Roger Bacon:1214-1294)이었지만, 기구의 실험을 시도한 것은 1670년, 공기의 부력을 이용하여 물위를 떠가는 배처럼 하늘을 떠다니는 “하늘 배(空飛船)”을 구상한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라나(Francesco Lana:1631-1687)였다. 그는 속을 진공으로 한 4개의 구리로 만든 공으로 공중으로 떠올라 가서 돛대로 전진한다는 구상을 했다. 그의 이러한 아이디어는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장치인 기구나 비행선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1709년에는 리스본에 살았던 신부 구스만(Gusman:1686-1724)이 종이 주머니에 열공기를 넣은 기구로 3.6m 높이까지 올라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b. 인류최초의 유인비행 몽골피에의 열공기기구

그러나 1983년 11월 27일, 인류는 공상 비행의 오랜 방황에서부터 현실로 돌아와 그토록 염원했던 인류 최초의 유인비행(the first human flight)를 이루어졌다.

프랑스 리용 근처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아노네(Annonay)에서 제지업을 하고 있던 몽골피에(Mongollfier) 형제는 공중비행의 실현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하여 구름을 주머니 속에 넣으려는 생각으로 수증기나 수소가스를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뜨거운 연기가 든 종이 주머니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는 것에서 힌트를 얻어 1983년 4월에 열공기 기구를 발명하였다. 그리고 6월 5일에 최초의 공개 실험에 성공했다. 그 결과 , 직경 11m, 부피 680입방m의 거대한 기구는 2천 높이까지 올라가서 30분 뒤에 2km 떨어진 곳에 무사히 내려왔다.

최초의 기구에 사용한 연기는 몽골피에 가스라고 명명되었다. 기구가 상승한 것은 지표면의 공기보가 비중이 작은 뜨거운 공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 2년 후로서 . 프랑스 과학원이 몽골피에 가스를 분석한 결과 그 비중이 차거운 공기의 2분의 1이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 뒤, 파리로 옮겨 간 이들 형제는 같은 해 9웕 19일에 베르사이유에서 기구에 동물을 싣고 8분 간을 비행한 뒤 2.4km떨어진 곳에 무사히 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동물실험비행에서 자신을 얻은 몽골피에 형제는 그 해 11월 21일에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을 실시하여 성공했다.

당초 루이 16세는 이 비행에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를 태우려고 했으나 역사적으로 기념해야 할 비행에 죄수 대신에 지망한 피라돌드 로제에(Francois Pliarre de Rozier: 1757-1785)와 다르란드 후작(the Marquis d’Arlandes)을 태우고 이 유인기구는 브로뉴 숲에서 이륙하여 약 9천m 고도에서 약 25분간 파리 상공을 비행한 후 파리 동부의 13구에 있는 뷰튜 오 카이유에 무사히 도착했다.

인류가 처음으로 신의 영역으로 여겨 왔던 하늘에 첫발을 들여놓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노네의 주민들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개한 발명가가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최초의 유인비행 100주년이 되는 1883년에 몽골피에 동상을 세웠다.

       
 

c. 샤를르의 수소기구

프랑스 과학원은 1766년에 영국의 고학자 커벤디시(Henry Cavendish)가 발명한 수소(당시 뜨거운 공기라고 불렀음)가 공기의 14분의 1정도로 가볍다는 것을 알고서 1783년 8월에 샤를르(Jacues Charles)에 부탁하여 수소기구 샤를이엘호(Charliere hydrongen balloon)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몽골피에식 기구로 최초의 인류유인 비행에 성공한 열 하루 뒤인 1783년 12월 1일, 샤를르와 로베르(Robert)를 태운 수소기구가 2시간 동안에 43km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불과 11일 사이에 열기구와 수소 기구로 인류 최초의 유인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유럽 각국은 물론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기구 붐이 일어났다. 그 결과 기구는 급속히 발전하여 과학적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d. 기구에 의한 영불해협 횡단 비행

인간이 기구로 하늘을 비행하는 데 성공한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역사적으로 크게 기념 할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1785년 1월 7일, 프랑스인 브란샬(Jean Pierre Blanchard)과 미국인 의사 존 제프리스 박사(Dr. John Jeffreis)가 브란샬식 기구를 타고 영국에서 프랑스로 영불 해협을 횡단 비행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비행 중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입고 있던 옷까지 바다에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거의 얼어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무사히 착륙했다.

한편 그 해 6월 15일 최초의 유인비행에 성공한바 있는 로지에는 브란샬의 횡단비행에 자극을 받아 열공기 기구에 수소기구를 얹인 로지에식 기구를 만들어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 횡단 비행을 시도 했으나 고도 400m에 이르러 공중 폭발하여 인류최초의 항공 희생자가 되었다.

그 뒤 100년이 지난 1883년 9월에 프랑스의 존스트에 의해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의 기구비행에 성공했다.

브란샬의 영불해협의 횡단비행은 처음으로 하늘로부터 국경을 돌파해 왔기 때문에 당시의 군사 연구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e. 전쟁에 이용된 기구

기구가 본격적으로 발달되면서 이 기구는 전쟁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기구를 군사목적으로 전쟁에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었다. 그는 1794년 6월의 벨지움의 플뢰리스전쟁(the battle of Fleueus)에서 정찰 수단으로 활용하여 프랑스 군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나폴레옹은 기구를 영국 침공하는데 사용하려고 계획했으나 실현에 옮기지는 못했다.

1849년에 오스트리아 군은 여러 개의 무인 열공기 기구에 14kg의 폭탄을 싣고 베니스를 방위하고 있는 이탈리아군을 폭격했다.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연방 군은 계류 기구를 사용하여 포탄이 떨어지는 곳을 관찰하여 수정하는 역할을 했으며 육군에 기구부대를 창설했다.

f. 최초의 항공 우편 비행

1870년 7월 19일에 일어난 프로이센과 프랑스간 전쟁(보불전쟁)에서 파리를 완전 포위당한 프랑스 군은 자유기구로 탈출을 시도했다. 9월 23일 기구 네프춘호(Neptune)에 사람과 125kg의 우편물을 싣고 상 피엘 광장을 출발하여 적군의 상공을 통과하여 3시간 후에 약 90km 떨어진 에브르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것이 항공우편의 효시가 되었다.

그 당시 파리에는 기구가 5-6개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구의 대량 생산과 승무원의 양성이 시급했으며 승무원으로는 선원과 서커스 곡예사를 이용했다.

이 기구 탈출 작적은 이듬해 1월 28일 프랑스군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총 66개의 기구를 띄워 모두 109명의 사람과 250만통의 우폄물을 날랐다. 그 가운데 58개가 무사히 도착했으며 6개가 적군진지에 떨어졌고 2개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새처럼, 구름처럼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어했던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하늘비행을 성공시킨 기구발명과 발달의 과정과 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기구사진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것들은 확실한 이론적 근거나 과학적인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연돌에서 올라가는 연기와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결합하여 착상했던 것이 위대 마침내 몽골피에 형제의 열공기식 기구를 발명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최초로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간 역사적인 유인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하늘을 비행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하여 수소기구의 개발 등 전 세계가 기구붐에 들끓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기구를 이용한 기상관측, 군사목적으로의 활용은 물론 수송수단으로까지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영불해협의 횡단 비행에 성공했고 대서양 횡단비행과 북극비행까지 계획했으나 실현에 옮기지 못하였다.

오늘날 기구는 장난감 정도의 작은 풍선을 비롯하여 기상 관측이나 성층권의 상황을 관측하기 위한 기구나, 우주선 연구를 위하여 3 만m까지 올려 보내는 등 기구가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장치로 발명되어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 준 기구나 비행선은 비행기의 발달사에 잠시 있었던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였을 뿐 그것이 항공기의 발달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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