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진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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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수송기 1990-2000년

 


기구로부터 비행선으로

인류는 기구의 발명으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껏 날고 싶어 했던 오랜 염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바람 따라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는 기구로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추고 조정이 가능한 새로운 비행장치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로부터 70년이 걸려서 태어난 것이 비행선(Airship)이었다.

프랑스의 앙리 지파르(Henri Giffard:1825-1882)가 처음으로 만든 연식 비행선에 이어 개발된 독일의 체펠린(Graft Ferdinand von Zeppelin:1830-1917)의 경식 비행선이 하늘의 왕좌로 떠올랐다. 지금은 비행기에 하늘을 내주고 말았지만 , 한때는 비행선이 하늘을 지배했던 화려한 시대가 있었다.

a. 하늘을 떠다니는 배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인간에게 비행하는 수단으로서 길잡이가 된 것이 새와 구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길잡이가 된 것이 바다 위를 떠 다니는 배였다.

옛 사람들은 바다와 하늘은 같다고 생각하고 배가 물위를 떠 가듯이 하늘에서도 떠서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하늘에 날아다니는 배라 해서 “비행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많은 선각자들이 비행선에 대해 여러 가지 구상을 했다. 그러나 모두가 하나의 구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1817년에 영국의 케일리 경 (Sir George Cayley:1773-1857) 이 설계한 비행선(1817년), 1835년에 포리(Pauly)와 에그(Egg)가 구상한 고래 모양의 비행선 돌핀(Dolphin), 레녹스(Lennox)가 착상한 비행선 이글(Eagle)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들이 그 당시에는 실현에 옮기지 못하였지만 결국 이것이 비행선의 발명의 기초가 되었다.

 

b. 조종이 가능한 움직이는 기구

많은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였으나 계속 실패하다가 매우 가벼운 증기기관의 실용화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1852년 9월 24일에 드디어 증기엔진과 프로펠러를 장비한 움직이는 기구 비행선(Airship)을 프랑스의 앙리 지파르(Henri Giffard:1825-1882)가 발명했다.

종래의 기구는 둥근 모양(구형)이었지만 이 비행선은 공기의 저항을 작게 하기 위해서 선체를 유선형으로 만들었다.

석탄 가스를 넣은 길이 42m의 주머니를 덮은 망 아래로 길이 20m의 나무 막대기를 매달고 거기에 무게 350파운드, 출력 3마력의 증기엔진을 장비하고 직경 11피트의 프로펠러를 1분에 110회 돌려 시속 10km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더욱이 여기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초보적인 방향타를 설치하여 조종이 가능하였다.

불꽃으로 가스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증기기관은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장치되어 있으며 연돌을 아래로 뽑는 등 치밀한 설계를 한 비행선이었다.

최초의 비행은 고도 1800m로 파리경마장에서 벨사이유까지 27km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c. 르나르와 크렙스의 전기모터 비행선

그러나 지파르의 증기엔진 비행선은 보일러에서 나오는 열기가 수소 가스에 인화될 위험때문에 실용적인 비행수단으로 발전할 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뮤돈(Meudon)비행학교의 사관 생이었던 샤를 르나르(Captain Charles Renard: 1847-1905)와 크랩스(Lieutenant A. C. Krebs) 는 국비를 몰래 사용하여 1884년에 전기 모터 비행선 “라 프랑스(La France)” 를 개발했다.

이 아름다운 유선형의 선체를 가진 비행선은 시망(Siemens)이 발명한 염화크롬 전지와 8.5마력의 전기모터를 사용하여 프로펠러를 회전시켜 시속 23km의 속도로 비행하여 목적지에서 180도 회전한 후 다시 출발지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출발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선회비행을 했다. 항공사상 최초의 조종이 가능한 비행선이다. 길이 108피트의 대나무로 만든 곤도라 앞 부분에 직경 20피트의 프로펠러를 장치하고 있다.

선체의 길이는 지파르의 비행선보다 길었지만 그 4분의 3의 용량의 가스로 총 무게 4만 파운드의 선체를 뜨게 했다.

   

d. 산토스 뒤몽의 가솔린 엔진 비행선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여 실용적인 비행선을 개발한 것은 파리에 살던 브라질 인 알베르트 산토스 뒤몽(Albert Santos Dumont:)이었다. 그는 1989년부터 1909년까지 모두 14척의 비행선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1989년 9월 20일 최초의 비행에 성공한 뒤몽 비행선 1호는 길이 25m의 황색 유선형의 비행선은 고도 400m로 파리 하늘을 비행하여 파리 시민들의 갈채를 받았다.

1901년 프랑스 항공클럽의 에펠탑까지의 30분 왕복비행에 현상금에 도전하여 그의 비행선 6호로 세번 만에 29분 걸려 에필탑 일주 비행에 성공하여 상금을 10맘 프랑을 획득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e. 연식 비행선들

앙리 지파르가 발명한 이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비행장치 라는 점에서 비행선은 각국이 앞을 다투어 개발했다. 처음에는 연식비행선이 개발되어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 연식비행선은 둥근 기구와는 달리 공기의 저항을 작게 하기 위해서 유선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겨우 두 서너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정도였고 더 크게 만들어 더 많은 사람을 태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개발된 것이 경식 비행선이다. 경식비행선이 개발 되기 전까지 하늘을 누볐던 연식비행선 들을 모아 보았다.

       
       
   

f. 비행선의 아버지, 째펠린 백작

1907년 7월 2일, 독일과 스위스 국경에 있는 보덴호에서 한첫의대형 비행선이 더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독일의 툉역장군인 째펠린(Graf von Zepplin:1838-1917)이 개발한 항공사사 최초의 경식비행선인 째펠린 LZ-1호 였다. 그의 비행선이 새로운 비행선시대를 열것이라고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기묘한 대형 비행선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서 미친 백작, 바보 백작이라고 불렀다.

그가 개발한 경식비행선은 그 때까지의 두터운 천으로 만든 유선형의 연식 비행선과는 그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른 알미늄골격에 포목으로 덮고 그 속에 16개의 수소 가스주머니를 장비하였다. 그 리고 앞뒤로 단 곤도라에 16마력의 엔진을 장비했다. 이 비행선은 선체가 금속 골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형화가 가는했으며 바람의 압력으도 선체가 변화하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재펠린 비행선은 제1차 대전때 전쟁 무기로도 사용되었지만 그것보다는 여객을 수송하는 교툥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에 항공상상 의의가 있다.

1909년에 세계 최초의 항공회사인 독일비행선주식회사 (Deutsche Luftschiffahrt A.G)를 설립하여 전쟁 일어나기 직전까지 5년동안 7척의 째펠린 비행선으로 3176시간을 비행하여 총 3만 4천명의 승객을 수송했다.

째펠린은 14년 동아네 모두 130척의 비행선을 만들었으며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최초의 경식비행선인 째펠린 LZ-1호, 10호 삭센호, 127호 백작호, 129호 린덴브르크호였다. 대서양의 횡단비해은 물론 세계일주 비행까지 하는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당시로서는 매우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대에 대형 수송이 가능한 이 비행선의 계속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으니 1937년의 힌덴브르크호의 뉴욕 착륙 직전의 공중폭발로 화려한 비행선 시대도 막을 내리고 말았다.

       
   

g. 무기화 된 비행선

1914년 7월 28일 제1차 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나라들이 비행선을 앞을 다투어 개발하여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해군비행선 부대를 창설하였으며 1915년에는 5척의 비행선을 동원하여 런던을 폭격을 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비행선을 군사목적으로 사용했지만 독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두 103척의 비행선을 제조했다. 그 가운데 째펠린호와 째펠린호 2세는 제2차 대전 직전까지 남아 있었다. 미국도 제2차 대전 중에 독일만이 아니라 미국도 168척의 비행선을 만들어 군사목적으로 이용했다.

h. 비행선에 의한 대서양 횡단과 세계일주 비행

최초로 비행선으로 대서양횡단비행에 성공한 것은 1919년 7월 2일, 스코트 소령과 30인의 승무원을 태운 영국의 비행선 R-34호였다. 이 비행선은 2일 스코트랜드를 출발하여 6일 뉴욕에 도착, 다시 9일 뉴욕을 출발하여 귀국하였다. 632km의 거리를 108시간 12분 걸려서 비행했다.

그뒤 1929년에 독일의 휴고 에케너(Dr. Hugo Eckehner)는 째펠린의 LZ-127 백작호를 타고 로 세계일주비행에 성공했다.

이 비행선은 8월 8일 미국 뉴저지의 레이크허스트를 출발하여 55시간 걸려서 독일의 프리드리히샤펜까지, 다시 소련을 거쳐서 동경까지 101시간 53분 걸려서 동경까지, 이어서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비행하여 무사히 로스안젤레스에 도착하고 이틀 후인 21일에 미국 대륙을 횡단하여 출발지인 레이크허스트에 도착했다.

대서양횡단 비행을 비롯하여 밖에 남미, 아프리카 비행등 가장 활약이 많았던 비행선이다.

       
   

i. 최후의 비행선, 힌덴부르크호의 비극

1936년에 째펠린은 세계일주에 성공한 백작호보다 더 크고 성능이 우수한 초대형 호화 배행선 힌덴부르크 (Hindenburg)호를 완수했다.

길이 245m, 직경 41m, 승무원 40-55인, 승객 50-72인의 이 거인 비행선은 화려한 객실, 피아노까지 설치한 오락실 그리고 식당이 갖추어져 있는 하늘의 호화 여객선으로서 대서양 항로에 취항했다.

힌덴부릌크호는 14개월 동안에 63회를 비행하면서 1300인 이상 수송했으며 복대서양만도 15회 횡단비행으며 총비행 거리는 30만km를 넘었다.

그러나 1937년 5월 6일 미국 뉴저지주의 레이크허스트(Lakehurst) 공항에 착륙하다가 갑자기 일어난 폭발사고로 비행선은 순식간에 화염에 쌓여 추락하고 말았다. 36명의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비행사고였으며 비행선 시대의 막을 내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뒤 항공수송수단으로 비행선은 모습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기구로부터 비행선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언구와 노력이 있었지만. 오토릴리엔탈이 동텰하게비판한 것 같이 기구나 비행선은 비행기의 발달에 사실상 아무런 공헌을 못했다. 비행기의 발달 과정에서 볼때 비행선은 비행기의발명을 늦춘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힌덴부르크의 사고 이후에도 사실상 하늘에서 비행선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다만. 수송수단으로서는 상용되지 않고 있다.

거의 30년 이상 하늘의 왕좌로서 황금기를 맞이했던 배힝선시대는 제2차대전을 계기로 획기적으로 발전한 비행기에 그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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