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사진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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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군용기 1970-1980
   현대군용기 1980-1990
   현대군용기 1990-2000
   현대군용기 2000-미래

   3. 민간기발달
   민간수송기 1910-1920년
   민간수송기 1930-1940년
   민간수송기 1950-1960년
   민간수송기 1970-1980년
   민간수송기 1990-2000년

 


라이트 형제 이후 제1차 대전까지

1903년에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이후 1914년에 제1차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11년 동안은 항공 르네상스시대로서 비행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했다.

이 기간에 100여종에 가까운 비행기가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행시간, 고도, 속도, 비행거리 에 있어서 기록 갱신이 계속 되었으며 특히 각종 상금이 걸린 비행대회가 열려 비행기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은 유럽 여러 나라의 항공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자존심이 상한 것은 프랑스였다. 항공발달사에 있어서 1891년에 독일이 최초의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한 것을 제외하고는 1783년의 기구발명, 인류최초의 유인비행 성공, 1852년의 비행선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하늘을 비행한 모든 공적을 프랑스가 독차지 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1890년 아델(Clement Ader)의 점프비행을 최초의 동력비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프랑스의 자존심과는 상관없이 실제로 당시의 항공계를 석권하고 있었던 것은 라이트 형제였다. 이것은 공기역학과 기계 공학적인 설계자로서 이들 형제를 능가할 만한 인물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운데 유럽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것이 산토스 뒤몽(Snatos Dumont)이었다. 그가 개발한 뒤몽 14bis는 라이트형제의 첫 비행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1초 동안에 220m를 비행했다.

뒤몽이 붙인 비행의 열기는 유럽 각국에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실제로 라이트 형제에 버금 가는 유럽의 비행개척은 프랑스의 가브리엘 브와쟁(Gabriel Voisin)과 샤를르 브와쟁(Charles Voisin)형제였다. 그 뒤를 이어 루이 블레리오(Louis Bleriot), 앙리 파아망(Henry Farman) 등이 독자적으로 각종 동력 비행기를 개발했다.

그리하여 불과 몇 년 사이에 유럽의 비행실력이 미국을 앞서게 되었다. 항공르네상스 시대에 개발된 많은 비행기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서 세계 최초의 양산기인 브와쟁 파아망기(브와쟁 표준형), 가장 아름다운 비행기인 앙트와네트 단엽기, 명기 중의 명기인 블레리오 11형 단엽기, 수상기의 시조인 커티스의 수상기. 고속기로서 명성을 듀펠듀상 레서. 거인기의 선구가 된 시콜스키의 그랜드호, 대전 중에 정찰기로 사용된 에드리히 다우베기, 세계적인 연습기로 인정을 받은 아브로 복엽기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비행기의 특징은 대부분이 목제 골격에 두터운 천을 씌워 버팀 줄로 보강한 구조를 하고 있었으며 엔진으로는 공냉식과 부냉색을 사용했으며 엔진의 본체가 프로펠러와 연결되어 회전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 밖에도 많은 동력 비행기가 제안되고 개발되었으나 그 가운데는 비행에 실패하였거나 구상만으로 끝난 동력 비행기도 많았다.

a. 유럽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한 산토스 뒤몽

미국의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기가 30분 이상 비행하는데 성공했고 무대를 파리로 옮겨거 비행활동을 하고 있을 때 유럽은 아직도 점프비행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유럽에서 처음으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것은 유럽 사람도 아닌 파리에 사는 브라질 사람 산토스 뒤몽(Alberto Santos Dumont)이었다. 그는 1906년 9월 13일, 파리 교외에서 자신이 개발한 뒤몽 비행기 14 bis형을 타고 약 7m를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이 유럽 최초의 동력 비행이었다. 이어서 10월 23일에는 7초 동안에 60m를 비행하여 3천프랑의 상금을 받았다. 이 동력 비행기의 특징은 주익과 전익이 겹날개이며 상자모양을 하고 있어 강한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어서 11월 21일에는 21초에 220m를 비행하였으며 이 기록은 프랑스 의 비행클럽에 의해 세계기록 제1호로 공인되었다. 그의 비행이 프랑스의 체면을 실려 주었으나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때의 비행시간인 59초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였다. 산토스 뒤몽이 개발한 상자모양의 동력비행기는 1906년 11월 비행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었으며 모두 9번 비행하는데 그쳤으며 21초 비행한 것이 최고 비행기록이며 나머지는 모두 7초 이하의 비행시간에 그쳤다.

       
     

b. 독자적 항공기술로 유럽형 비행기를 개발한 브와쟁 형제

독자적 항공기술로 유럽형 비행기를 개발한 브와쟁 형제 라이트형제나 뒤몽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설계로 동력 비행기를 개발한 것이 가브리엘 브와쟁(Gabriel Voisin:1980-?)과 샤를르 브와쟁(Charles Voisin:1982- 1912)형제였다.

이들 형제는 1907년 3월 30일 최초로 복엽기인 브와쟁. 드라그란쥬 1형을 개발하여 6초 동안에 60m를 비행했다. 이 비행기는 그 당시의 유명한 비행가 드라글나쥬의 주문으로 만든 것으로서 브와쟁기의 형식 명에 주문자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브와쟁기의 특징은 상자모양의 날개와 앞쪽에 승강타 그리고 뒤쪽에 큰 수평 안정판과 수직 안정판을 갖춘 안정성이 우수한 비행기 였다.

브와쟁 형제의 후계자로서 훗날 비행기 설계자로서 이름을 떨친 앙리 파아망(Henry Farman)의 주문으로 만든 브와쟁 파아망 1형기는 그 성능이 매우 우수하였다. 그 뒤 몇 차레 파아망의 의견에 따라 개량한 앙리 파아망기를 직접 조종하여 1908년 1월 13일에 유럽 최초의로 1km를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동시에 왕복 비행하여 출발지점에 다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유명한 브와쟁 표준형은 브와쟁 파아망1형을 더욱 발달시킨 것으로서 1908년 12월 1일에 첫 비행했다. 그 당시 개발된 비행기 가운데 가장 안전성이 우수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1909년까지 20대를 주문 받아 대량생산을 했다.

브아쟁 표준형은 4장의 칸막이를 설치한 상장형의 겹 날개와 앞쪽에는 홑겹형의 승강타가 있으며 뒤쪽에는 상자형 복엽의 수평안정판이 있어 안전성이 매우 뛰어났으며 옆 방향의 조종장치가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c. 우아한 하늘의 귀부인 앙트와넷트

항공 초기에 개발된 많은 비행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비행기가 앙트와넷트 단엽기(Antoinette monoplane)였다. 이 당시 개발된 대부분의 비행기가 설계자의 이름을 붙였으나 이 비행기만은 이 비행기를 개발한 회사의 사장 쥴 가스탄빗드의 딸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유럽 항공계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고 실제로 이 비행기를 설계한 레온 루바밧술(Leon Levavasseur)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루바밧술이 개발한 최초의 비행기는 1908년에 완성한 가스탄빗드 만잔1형으로서 4회 실험비행 가운데 최고로 150m를 기록했다. 앙트와넷트 단엽기의 명성을 떨친 것이 1908년 10월 9일에 첫 비행을 한 앙트와넷트 IV형이다.

이 비행기로 1909년 7월 19일, 라담((Hubert Latham)이 조종하여 영불해협의 횡단 비행을 시도 했으나 엔진 고장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바다에 착수하고 말았으며 그 1주일 뒤에 횡단비행에 성공한 브레리오에게 그 영광을 빼앗기도 말았다.

그러나 1개월 뒤에 앙트와넷트 단엽기는 랭스 비행대회에서 2시간 17분 21초에 비행거리 154.6km를 비행하여 세계기록을 수립하였다.

앙트와넷트 단엽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VII형으로서 라담이 조종하여 1910년에 고도1천m, 시속 77.6km의 기록을 세웠으며 1909년 7월 27일에 다시 영불 해협에 도전했으나 역시 엔진 고장으로 바다에 착수하고 말았다. 앙트와넷트 VII형은 당시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기술적을 가장 근대적인 비행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d. 영불횡단비행에 성공한 블레리오 단엽기

영불횡단비행에 성공한 블레리오 단엽기 1908년 프랑스의 루이 블레리오(Louis Bleriot)가 개발한 홑 날개 비행기(단엽기)는 근대 비행기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명기이다. 이 단엽기는 나무로 만든 골격의 동체 위에 두터운 천이나 합판을 입혔으며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꼬리 부분은 유선형으로 했고 그 속에 엔진, 연료탱크, 조종석이 있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날개 뒤에 프로펠러가 있어서 미는 방식(추진식)이었으나 블레리오의 단엽기는 동체 앞에 프로펠러가 있어 이끄는 방식(견인식)의 비행기 였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는 조종성에 중점을 두었으나 블레리오의 비행기는 안정성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지상을 이륙한 비행기는 전방 좌우로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다시 안전하게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최초의 비행기였다.

블레리오가 만든 비행기 가운데 항공사상 길이 남을 명기는 블레리오 11호(Bleriot XI)로서 라이트기의 3분의 1 크기 밖에 안 되는 소형의 매우 가벼운 단엽기였다. 1909년 7월에 항공사상 최초로 영불 해협을 횡단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1910년에는 속도, 고도, 비행거리 면에서 최고의 기록을 수립했다. 1911년에는 시속 111km로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같은 해 런던-파리간을 무착륙 비행하는 위력을 보였다.

블레리오 11형은 당시 세계적인 명기가 되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많은 주문을 받았으며 항공사상 대량 생산을 한 첫 비행기가 되었다.

       
       
 

e. 항공초기의 수상기의 개발과 커티스의 실용 수상기

항공초기의 수상기의 개발과 커티스의 실용 수상기 항공초기에 개발된 비행기는 그 대부분이 육상기였으나 그 때부터 수상기에 대한 착상이 있었다. 그리하여 . 육상기에 이어서 개발된 것이 기체에 프로트(float)를 달고서 물에서 뜨고 내리는 수상기였다. 수상기는 중량이나 공기저항이 증가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추진력이 부족했던 당시로서는 물위에서 뜨고 내리는 것은 사실상 어려움이 많았다.

프랑스의 브와쟁의 친구 앙리 파브르(Henri Fabre)는 항공사상 처음으로 수상기 이드라 비온을 개발하였다. 그리하여 1910년 3월 28일 말세이유 근처의 호수에서 이륙하는데 성공했다. 그 뒤 앙리 파아망도 수상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수상기를 본격적으로 실용화 한 것은 미국의 커티스(G. H. Curtiss:1878-1930)였다. 커티스는 전화기를 발명한 그라함 벨의 지원을 받아 1908년 7월 4일, 그의 복엽기 준 버그(June Bug)를 개발하여 1508m를 비행하여 항공사상 최초로 항공 트로피 Scientific American award를 받았다..

1910년 11월 18일, 항공사상 최초로 순양함 버밍감의 특설 갑판에서 이륙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듬해 1911년 1월 18일, 커티스는 순양함 펜실바니아의 함상에 착륙 하는데 성공했다.

1911년 1월 26일, 동체 밑에 중앙과 날개 끝에 프로트를 단 수상기를 만들어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최초로 뜨고 내리는데 성공했다. 날개 모양의 프로트를 장착한 이 수상기는 1911년 7월에 미국 해군기로 채택되었다..

       
       
       
   

f. 거인기 시콜스키 그랜드

라이트 형제의 동력비행기가 탄생하고 겨우 10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 헬리곱터의 왕으로 알려진 소련의 시콜스키(Sikorsky:1889-1972)가 1903년에 4발의 호화로은 객실을 가진 대형 수송기 시콜스키 그랜드호(Sikorsky Grand) 를 개발했다. 이 당시 대부분의 비행기가 총무게가 1톤 정도였으나 이 비행기는 날개 폭 28m, 총중량 4,100kg의 거인기로서 100마력의 엔진 4개를 장착한 시속 88km의 대형기였다.

1911년 영국의 쇼트 형제가 쌍발기를 그리고 1914년에 이탈리아의 카프로니가 3발기를 개발했으나 4발기는 시콜스키의 그랜드호가 처음이었다. 1913년 8월에 8명을 태우고 1시간 54분을 비행하여 세계 기록을 세웠다.

이 그랜드호의 객실에는 테이블, 소파, 4개의 좌석이 있었으며 동체의 뒷부분에 화장실과 갱의실이 있었으며 앞부분에는 발코니가 설치되어 있다.

1914년에 시콜스키는 그랜드호 보다 훨씬 큰 이리아 무로메트(Ilya Mourometz)를 개발했다. 익폭 31m, 총 무게 4,500kg의 이 비행기는 그해 2월 11일에 16명을 태우고 비행하는데 성공했다.

g. 모두가 애용한 세계적인 연습기 아브로 복엽기

영국의 아브로 비행기 제작회사가 개발하여 전세계적인 연습기로서 그 가운데 가장 이름을 날린 것이 아브로(Avro) 504이다. 회사 A.V. Roe의 두문자 를 다서 이름을 붙인 이 아브로 504 복엽기는 1913년에 1번기를 완성하였으며 제1차 대전 중에 정찰기 뿐만 아니라 폭격기로도 크게 활약했다.

이 복엽기의 특징은 정비가 쉬울 뿐만 아니라 조종도 매우 쉽다는데 있었다. 연습기로서 영국 공군이 많이 사용했으며 20년대 후반까지 애용되었다.

제1차 대전 중에 약 8천대 이상이 생산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약 3천대가 남았으며 대전 후에도 영국 공군의 연습기로 활약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아브로 504K는 영국의 민간항공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객을 4명 태울 수 있는 여객기로 개조되어 그 이름을 아브로 536이라 했다.

h. 시행착오로 끝난 진귀한 비행기

항공초기에 많은 비행기들이 개발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시행착오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들 실패작 가운데 몇 가지 진귀한 비행기를 보면

- 모티마와 본 두 사람이 개발한 두개의 주익과 미익을 하나의 원형으로 연결한 원형기인 세이프티.
- 프랑스의 데그빌리가 1908년에 비행 이론을 무시하고 만든 기묘한 원형 구조의 비행기인 데그빌리.
- 영국의 육군 장교였던 존 윌리암 댄이 1910년에 비행기 고유의 안전성에 중점을 두고 꼬리 날개가 없이 제작한 무미익기 댄 D.5.,
- 1904년 영국의 홀레이 쇼. F. 필립스가 만든 단엽기 필립스 1호,
- 1910년에 영국의 악셀조와 브르코가 설계고 제작한 복잡한 강관 구조의 비행기 세론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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